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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식당에서 아이가 물을 쏟았어요. 몸은 이미 한계였고, 결국 저도 모르게 짜증이 확 터졌어요. 물놀이를 마치고 외식을 하러 간 날이었어요. 아이와 물놀이 한번 다녀오면 짐 챙기고,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젖은 물건 정리하는 것까지 정말 체력이 쭉 빠지잖아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상태에서 유준이가 물까지 쏟으니 평소 같으면 그냥 닦고 넘어갔을 일인데 그날은 그러지 못했어요. “아, 진짜! 조심해야지!” 목소리부터 커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물 한 컵 쏟은 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요.
육아 중 화, 물 쏟은 순간 터졌다
유준이는 아직 31개월이에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부쩍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엄마 손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요. 물컵을 잡다가 놓칠 수도 있고, 밥을 먹다가 흘릴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날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왜 하필 지금 물까지 쏟아.’ 딱 그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아이가 일부러 물을 쏟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자기가 물을 마시려고 하다가 실수한 건데, 저는 그 행동을 마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받아들였어요. 생각해보면 이 시기 아이들은 손의 움직임이나 힘 조절이 아직 계속 발달하는 중이고, 한 가지 행동에 집중하는 것도 어른만큼 능숙하지 않아요. 그래서 물을 쏟거나 음식을 흘리고, 무언가를 옮기다 떨어뜨리는 작은 실수는 충분히 생길 수 있어요. 그럴 때 “왜 또 쏟았어!”라고 실수 자체를 혼내기보다, “물이 쏟아졌네. 같이 닦아보자.” “다음에는 컵을 두 손으로 잡아보자.” 처럼 지금 해야 할 행동과 다음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짧게 알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육아에서는 참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제가 힘들 때는 더요.
밥맛도 없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어요
한번 짜증이 나고 나니 쉽게 기분이 풀리지 않았어요. 물을 닦고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밥맛도 없어졌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유준이가 뭘 해도 괜히 신경 쓰이고, 남편이 하는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요.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 같이 즐겁게 물놀이를 했는데, 물 한 컵을 계기로 식사 분위기까지 완전히 달라져 버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말 제가 화가 났던 이유는 유준이가 물을 쏟아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지쳐 있었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똑같은 행동인데도 제가 여유 있는 날과 없는 날 받아들이는 정도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아이가 물을 쏟아도 “아이고~ 또 쏟았네.” 하면서 닦아줄 수 있는데,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 날에는 그 작은 실수 하나가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아이에게 화가 확 올라오는 순간 아이의 행동만 보기 전에 내 상태도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지금 이 행동이 정말 화낼 일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피곤해서 예민한 건가?’ 그 짧은 생각 하나라도 해보려고요. 물론 화가 나는 순간마다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적어도 ‘내가 힘든 것’과 ‘아이가 잘못한 것’을 구분해보는 연습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 애교 한 방, 화낸 엄마가 미안해졌어요
그렇게 혼자 기분이 잔뜩 상해 있는데 유준이가 제 눈치를 슬쩍 보더라고요. 조금 전 엄마가 화낸 걸 아는지 제 얼굴을 살피다가 평소처럼 애교를 부렸어요. 그런데 또 그 한 방에 화가 스르륵 풀렸어요. 화가 가라앉고 나니 이번에는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어요. ‘물 좀 쏟은 건데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지?’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보다 제가 힘들다는 이유로 별것 아닌 실수를 크게 만든 것 같아서 더 미안했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어요. 제가 목소리를 높였던 순간도 떠오르고, 제 눈치를 보던 유준이 얼굴도 생각나고요. 지난 일을 자꾸 곱씹다 보니 결국 제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했어요. 부모도 사람이니 육아하면서 한 번도 화내지 않을 수는 없을 거예요. 중요한 건 화를 냈다는 사실에만 죄책감을 느끼고 끝내는 게 아니라, 감정이 가라앉은 뒤 아이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저도 제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그냥 없던 일처럼 넘어가지 않으려고 해요. “아까 물 쏟았을 때 엄마가 너무 크게 화내서 미안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부모의 권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엄마도 잘못했을 때 사과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이의 실수와 잘못은 조금 구분해서 봐주려고 해요. 일부러 물을 던지는 행동이라면 분명 알려줘야겠지만, 마시려고 하다가 놓친 건 말 그대로 실수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이기에 실수는 할 수 있는 거고, 그걸로 화를 내서 분위기를 망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일단 같이 닦고, 알려줘야 할 게 있다면 “다음에는 두 손으로 잡아보자” 정도로 짧게 말해주려고 해요. 그리고 유독 작은 일에도 화가 나는 날에는 아이를 먼저 탓하기 전에 ‘오늘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제 상태부터 한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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