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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로 병원에 가도 울지 않던 아이가 안과에서 연고 한 번 바른 뒤로 청진기만 봐도 울기 시작했어요. 원래 유준이는 소아과를 크게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감기로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이 입안을 보고 청진기로 배와 등을 확인해도 곧잘 진료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두 달 전 안과에 다녀온 뒤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당시 눈에 연고를 바르는 과정에서 많이 놀랐는지 그 이후부터 병원에서 하는 검사 자체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어요.
감기 병원엔 잘 가던 아이, 안과 연고 한 번에
사실 안과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대한 큰 거부감은 없었어요. 소아과에 도착하면 조금 긴장하기는 해도 진료실에 잘 들어갔고, 청진기를 대는 것도 크게 싫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소아과를 가면서도 미리 어떤 진료를 받을지 설명해줬어요. “유준아, 선생님이 배 뚜뚜하고 입안 보고, 귀 보고, 코 보면 끝이야! 아픈 거 하나도 없어~” 병원에 가기 전부터 몇 번이나 이야기해줬어요. 미리 알고 가면 조금 덜 무서워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 말을 가만히 듣던 유준이가 갑자기 물어봤어요. “김말이 안 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갑자기 무슨 김말이지?’ 먹는 김말이를 이야기하는 건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두 달 전 안과에 갔을 때였어요. 눈에 연고를 바르기 위해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이불로 몸을 돌돌 감쌌거든요. 그때 간호선생님이 이 이불을 김말이 이불로 불린다고 했는데, 유준이가 그걸 기억했던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마음이 짠했어요. 저는 이미 두 달이나 지난 일이라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유준이에게는 아직 그때의 기억이 꽤 크게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응. 오늘은 김말이 안 해. 배 뚜뚜하고 입이랑 귀, 코만 보고 끝이야.” 다시 설명해주니 그제야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어른에게는 ‘병원에서 잠깐 있었던 일’이지만 아이에게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 무서운 기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소아과 진찰, 양손 꽉 붙들고
그렇게 병원에 가기 전부터 충분히 설명했으니 이번에는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선생님을 보고 청진기가 등장하니 또 표정이 달라지더라고요. 결국 울기 시작했어요. “유준아, 아까 엄마가 말했지? 배 뚜뚜만 하는 거야. 금방 끝나.”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미 긴장한 유준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진료를 안 받을 수도 없었어요. 아무리 울어도 감기 상태는 확인해야 하니까요. 제가 유준이를 안고 양손을 꽉 붙잡았어요. 청진기를 대는 동안에도 계속 울고 온몸에 힘을 꽉 줬어요. 입안을 확인할 때는 더 싫어했고요. 저도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지만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잖아요. 진찰은 받아야 하니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겨우 진료가 끝났어요. ‘됐다. 이제 진짜 끝났다.’ 저도 긴장이 풀려서 유준이를 안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는데 옷을 보니 유준이가 오줌을 조금 지렸더라고요. 얼마나 긴장하고 힘을 줬으면 오줌까지 지렸을까 싶었어요. 평소에는 화장실도 잘 이야기하는 아이인데, 병원이 무서워 울고 온몸에 힘을 주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실수한 것 같았어요. 순간 마음이 짠했어요. 그래서 왜 쉬를 했냐고 묻지도 않았어요. “많이 무서웠어? 이제 다 끝났어.” 하면서 꼭 안아줬어요.
사탕사탕, 의사선생님이 사탕 안 줬어
그런데 그렇게 무서워서 오줌까지 지린 아이가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울면서 한 말이 있었어요. “사탕… 사탕….”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어요. 그러더니 더 서럽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의사선생님이 사탕 안 줬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걱정하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조금 전까지 그렇게 서럽게 울고, 무서워서 오줌까지 지려놓고 가장 서러운 건 사탕을 못 받은 거였나 봐요. 예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사탕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는지 이번에도 당연히 받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유준아, 사탕 먹고 싶었어?” 물어보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그 모습이 짠하면서도 어찌나 웃기던지요. 결국 소아과를 나와 약국에 가면서 비타민 사탕을 하나 사줬어요. 조금 전까지 눈물범벅이었던 아이가 사탕 하나를 손에 쥐자 조금씩 진정하는 모습을 보니 ‘그래, 오늘 정말 고생했다.’ 싶었어요.
이번 병원 방문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오줌을 지린 것도, 사탕을 찾은 것도 아니었어요. “김말이 안 해?” 두 달 전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남았어요. 저는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여전히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거죠. 그래서 앞으로 병원에 갈 때는 “하나도 안 아파.”라고만 이야기하기보다 오늘 어떤 걸 할 건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은 결국 약국에서 비타민 사탕 하나를 사줬어요. 사탕을 받아 들고 조금씩 진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답니다. 무서웠는데도 끝까지 진료받느라 고생했으니, 오늘만큼은 사탕 하나쯤 괜찮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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